개천절에 선언한 'AI 기본사회': 9조 4천억 원은 어디에 쓰이나

 


지난 10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천절 경축식이 열렸습니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경축사에서 "AI 기본사회"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나라가 세워진 날을 기리는 자리에서 총리가 연결한 것은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이었습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오래된 문장을 인공지능 시대의 약속으로 다시 읽은 것입니다. 총리는 지금의 변화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넓게 번지는 변화라고 짚으면서, 그 변화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에게 이로움이 되는 힘이 되도록 AI 기본사회를 한 걸음씩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선언이 선언으로 끝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뒤에는 이미 나와 있는 숫자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언 뒤에 붙은 숫자, 9조 4천억 원

약 한 달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7년 예산 요구안을 발표했습니다. 전체 규모는 29조 6천억 원으로 올해의 23조 8천억 원보다 24.5%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이고, 그중 인공지능 전환에 배정된 몫이 9조 4천억 원입니다. 2026년의 5조 1천억 원과 비교하면 84.3% 늘어난 금액으로, 2027년 정부 전체의 AI 지출 계획 가운데 57%를 과기정통부 한 부처가 맡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숫자를 읽을 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9조 4천억 원은 확정된 예산이 아니라, 정부가 국회에 "이렇게 쓰겠습니다"라고 제출한 요구안입니다. 국회 심의를 통과해야 실제 돈이 되고, 심의 과정에서 금액이 줄거나 배분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개천절 선언이 방향을 보여 준 것이라면, 예산안은 그 방향에 붙은 가격표이고, 최종 결제는 아직 남아 있는 셈입니다.

돈의 큰 흐름을 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항목금액비고
과기정통부 2027년 예산 요구안 전체29조 6천억 원올해보다 24.5% 증가, 역대 최대
이 중 AI 전환9조 4천억 원2026년 5조 1천억 원에서 84.3% 증가
최상위 AI 모델 확보약 5조 5,900억 원GPU 약 1만 장 확보 포함
3대 메가프로젝트약 7,956억 원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AI 서비스와 응용약 1조 9천억 원보도 기준
AI 포용 사회약 1조 2천억 원보도 기준
지역 균형 연구 기반약 9,000억 원수도권 밖 연구 거점 지원

가장 큰 덩어리는 모델과 GPU

돈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최상위 AI 모델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약 5조 5,900억 원이 이 항목에 배정됐고,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1만 장을 사들이는 계획도 여기에 포함돼 있습니다.

정부가 직접 국가 단위 모델 확보에 나서는 배경은 단순합니다. 공공 서비스와 산업의 기반이 되는 모델을 해외 빅테크에만 기대면, 가격도 조건도 남의 결정에 따라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델을 쓸 수 있는지, 데이터가 어디로 가는지 같은 문제까지 남의 손에 맡기는 셈이라, 주요국마다 자기 모델과 자기 연산 능력을 갖추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 경쟁에 본격적으로 돈을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몸을 가진 인공지능인 피지컬 AI를 묶은 3대 메가프로젝트에도 약 7,956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모델이라는 두뇌와, 그 두뇌가 돌아갈 데이터센터라는 공장과, 현실 세계에서 움직일 몸을 한 번에 갖추겠다는 그림입니다.

'기본사회'라는 말의 실체, 서비스와 포용

선언에서 가장 강조된 단어는 사실 돈이 아니라 "소외"였습니다. 예산안에도 그 방향이 반영돼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AI 서비스와 응용 분야에 약 1조 9천억 원, AI 포용 사회 분야에 약 1조 2천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국민 누구나 쓸 수 있는 무료 국내 AI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도 약 2,500억 원 규모로 거론됩니다.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의 연구 기반을 돕는 데도 약 9,000억 원이 따로 잡혀 있습니다.

한 총리의 이력도 이 그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네이버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지난 7월 1일 취임한 한 총리는, 취임 때 4개 부처에서 시범 운영 중이던 업무용 AI를 올해 말까지 전 부처로 넓히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만드는 AI를 시민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곳이 민원이나 공공 서비스 같은 생활의 접점이 되도록 하겠다는 뜻입니다. 선언의 문장과 예산의 항목이 서로를 향하고 있는 셈입니다.

남은 관문은 국회, 그리고 집행

물론 발표된 금액이 그대로 집행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예산안 심의에서는 항목마다 필요성을 따지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고, 실제 쓰임새는 집행 단계에서 또 한 번 갈립니다.

여기에 돈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GPU는 돈이 있어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 사기 어려운 물건이 됐고, 좋은 모델을 만들 연구자와 엔지니어도 하루아침에 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예산안의 성패는 금액 자체보다, 심의를 통과한 돈을 제때 제대로 된 곳에 쓰는 집행 속도에서 갈릴 가능성이 큽니다. 지켜보는 쪽에서도 발표 순간의 숫자보다, 내년 상반기까지 실제로 계약되고 가동되는 모습을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난 글에서 살펴이본 AI 기본법 규칙을 세우는 일이었다면, 이번 예산안은 그 규칙을 실제로 굴릴 연료를 채우는 일입니다. 법 다음에 돈이 따라붙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AI 정책이 선언의 단계를 지나 실행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해외에 사는 한국 독자에게도 이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무료로 풀리는 국내 AI 서비스와 공공 분야의 AI 확대는 국경을 넘어 닿는 변화입니다. 한국 정부의 민원이나 공공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이용하는 일이 잦은 재외국민일수록, 그 서비스 뒤에 어떤 AI가 붙는지가 곧 생활의 편의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개천절의 선언이 내년 실제 서비스로 이어질지는 국회 심의와 집행을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방향 하나는 정해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인공지능을 몇몇 기업의 기술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눠 쓰는 기본 조건으로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는지는 이제 숫자에서 서비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입니다.

출처: 2026년 10월 3일 개천절 경축식 한성숙 국무총리 경축사 관련 Aju Press 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7년 예산 요구안 관련 연합뉴스 보도(29조 6천억 원 요구안, AI 9조 4천억 원, 최상위 모델 확보 5조 5,900억 원, 3대 메가프로젝트 7,956억 원, 지역 균형 약 9,000억 원), 배분 세부 관련 Yonhap Infomax 보도. 예산 수치는 국회 심의 전의 요구안 기준입니다.

이 주제 더 보기: AI를 법으로 다스리기 시작했다: EU AI법과 한국 AI기본법 정리 · 규제 시계를 되돌린 유럽, 먼저 시행한 한국 · 정부가 만든 AI 데이터, 이제 한 창구에서 찾는다 — AI허브와 원-윈도우 · AI가 사고를 치면 누가 알려야 할까, 호주 청문회가 던진 질문

많이 본 글

자기소개 및 블로그 운영방향

양자 컴퓨터와 AGI

AI 발전 속도와 사회적 준비의 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