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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지시대로가 아니라, 의도대로 — OpenAI가 모델 규칙을 다시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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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9일, OpenAI가 모델 스펙을 개정했다. 모델 스펙은 OpenAI가 자사 모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공개 문서로 적어 둔 것으로, ChatGPT와 API 모델이 그 대상이다. 이 문서는 2024년부터 공개돼 왔고, 이번 개정은 그 문서를 다섯 가지 가치 중심으로 다시 정리한 것이다. OpenAI가 밝힌 다섯 가지 가치는 인간 의도에 대한 충실성, 해악 최소화, 정직성과 투명성, 인간 행위 주체성 촉진, 배려다. 이 가치들은 새로 발명된 것이 아니라 기존 스펙 곳곳에 이미 반영돼 있던 약속들을 한데 모은 것이라고 OpenAI는 설명했다. 약속을 모은 이유는, 모델이 지시에 적히지 않은 상황을 만났을 때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다섯 가지 중 기초가 되는 것은 인간 의도에 대한 충실성이다. 충실성은 지시를 글자 그대로 따르는 것과 다르다. OpenAI와 개발자, 사용자가 각각 무엇을 의도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깊이 이해하고, 그 이해가 불완전할 때는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OpenAI는 사람의 믿음과 가치가 변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적었다. 모델이 사람을 조용히 유도하거나 선택을 대신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충실성과 함께 명령 체계도 다시 정리됐다. OpenAI가 스펙을 쓰고 경계를 정하고, 개발자가 그 경계 안에서 응용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사용자가 그 안에서 모델에게 일을 맡기는 구조다. 지시가 충돌할 때 어느 지시가 적용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명령 체계의 역할이다. 이번 개정은 이 체계를 충실성 항목 안에 포함시켰다. 새로 추가된 지침도 있다. 대화와 기억, 개인화 같은 맥락을 신중하게 다루는 지침, 인간 행위 주체성을 지원하는 기본값, 관련 사회 규범을 따르는 원칙, 그리고 모델의 행동이 가져오는 부수 효과를 통제하고 소통하는 지침이 확대됐다. OpenAI는 감독에 관한 지침도 추가했다고 밝혔다. 모델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불확실해하는지를 솔직하게 밝히는...

1조 개 가중치가 열렸다 — 미스트랄 Large 4 '르 총크', 이제 누구나 내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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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랄이 2026년 10월 29일, 대형 모델 Large 4의 가중치를 공개했다. 별명은 '르 총크'다. 지금까지는 미스트랄의 미리보기 API로만 써 볼 수 있던 모델인데, 이제 허깅페이스에서 내려받아 자기 서버에 올려 돌릴 수 있게 됐다. API로 빌려 쓰는 것과 가중치를 직접 갖는 것은 다른 일이다. 빌려 쓸 때는 제공자의 서버와 규칙 안에서만 움직이지만, 가중치를 가지면 모델을 검사하고, 고치고, 자기 환경에 맞게 돌릴 수 있다. 이번 글은 그 차이가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확인된 사실인지를 정리한다. 순서부터 짚자. 미스트랄은 10월 6일 Large 4를 공개 프리뷰로 먼저 내놨다. 그때는 API로만 써 볼 수 있었고, 가중치는 '월말까지' 공개하겠다는 약속만 있었다. 약속은 10월 29일에 지켜졌다. 이번에 풀린 것은 프리뷰 그대로가 아니라, 이후 3주간 추가 강화학습을 거친 개선된 버전이다. 미스트랄 발표에 따르면 이 3주 동안 코딩과 방어적 사이버 보안 성능이 크게 올랐고, 추론 효율도 좋아졌다. 다만 이 개선폭은 미스트랄이 밝힌 수치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둔다. 크기는 이렇다. 허깅페이스 모델 카드 기준, Large 4는 약 1조 개 파라미터의 혼합 전문가 모델로, 글과 이미지를 입력받고 글로 답한다. 토큰 하나를 처리할 때 실제로 작동하는 전문가는 약 490억 개 규모이고, 임베딩과 출력층까지 합치면 약 520억 개로 표기된다. 숫자 두 개가 헷갈릴 수 있는데, 기준이 다를 뿐이다. 전체 전문가 128개 중 토큰마다 4개가 활성화되고, 1개의 공유 전문가가 더해지는 구조다. 프리뷰 발표 때는 전체를 1.05조 개로 소개한 보도도 있었는데, 공개된 모델 카드는 약 1조 개로 적고 있다. 같은 모델을 두고 반올림과 표기 기준이 달라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문맥 길이는 100만 토큰이다. 긴 문서 뭉치를 통째로 넣고 질문하는 작업, 코드 저장소 단위로 살펴보는 작업이 가능한 범위다. 언어...

인용이 진짜 논문인지 확인해 주는 AI — Digital Science, Jenni AI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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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써 준 글에 그럴듯한 참고문헌이 줄줄이 달려 있는데, 막상 찾아보면 그런 논문이 없을 때가 있다. 글을 읽는 사람은 출처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지만, 출처 자체가 지어낸 것이라면 그 안심은 근거가 없다. 연구용 글쓰기 도구 회사 Jenni AI를 인수한 Digital Science의 발표는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린다. 글쓰기 도구를 실제 출판 데이터베이스와 연결하면, 인용이 진짜 논문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Digital Science는 2026년 10월 29일, AI 연구·글쓰기 플랫폼 Jenni AI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회사 발표에 따르면 Jenni AI는 189개국에서 800만 명 이상의 학생과 연구자가 쓰는 도구다. 논문을 업로드하거나 참고문헌 목록을 가져오고, 고른 출처를 살펴보면서 글을 쓰고 다듬고, 인용을 원문과 대조해 확인할 수 있다. 일반 AI 도구처럼 편하게 쓰이도록 만들었지만, 학술 연구의 요구에 맞게 설계됐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이번 인수의 핵심은 연결이다. Digital Science는 Jenni AI를 자사의 연구 데이터와 연결할 계획이며, 그 시작점으로 Dimensions를 들었다. Dimensions는 회사 소개 기준으로 1억 7,100만 편의 연구 간행물을 담은 데이터베이스다. Jenni AI 사용자가 찾고 인용하는 출처가 출판된 연구 기록에 근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발표의 취지다. 다만 이 연결은 앞으로 수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계획이다. 발표 당일에 이미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왜 이런 연결이 필요할까. 일반 AI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 참고문헌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발표는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한다. 없는 논문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면, 연구자 자신의 작업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보여주기 어려워진다. 인용은 글의 뼈대 같은 것인데, 뼈대 하나하나가 실제 논문과 맞닿아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글 전체의 신뢰가 흔들린다. 글쓰기 도구가 데이터베이스와 연...

경쟁자인데 칩을 산다 — OpenAI의 구글 TPU 구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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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가 경쟁자의 칩을 산다는 보도가 나왔다. 주인공은 OpenAI, 칩을 파는 쪽은 구글이다. 인공지능 모델로 맞붙는 두 회사가, 칩 거래에서는 사고파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직 확정된 거래가 아니라 보도된 계획이라는 단서를 먼저 달아두자. 그 단서를 빼면, 이 글은 사실보다 한 발 더 나간 얘기가 된다. 이 글은 그 단서를 끝까지 지키면서, 확인된 데이터를 중심으로 이 보도가 어떤 흐름 위에 놓여 있는지 살펴본다. 보도는 이렇게 전해졌다. The Information이 10월 27일에 OpenAI가 구글의 AI 칩 TPU 구매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로이터가 이를 전했다. 규모가 얼마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언제 납품되는지, 어느 세대 칩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OpenAI는 로이터에 논평을 거부했고, 구글은 즉시 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확인된 것은 '사려 한다'는 계획의 존재이지, '샀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 구분이 이 글 전체의 뼈대다. 계획과 계약 사이에는 아직 여러 단계가 남아 있다. 실제 계약이 맺어졌는지, 물량이 확정됐는지, 납품 일정이 잡혔는지는 어느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TPU가 무엇인지, 그 역사를 먼저 짚어보자. TPU는 구글이 인공지능 학습과 추론을 위해 직접 설계한 전용 칩이다. 1세대는 2015년에 내부에 배치되고 2016년 5월에 공개된 추론 전용 칩이었다. 이후 2세대(2017년), 3세대(2018년), 4세대(2021년), 5세대(2023년, 비용형과 성능형으로 분화), 6세대 Trillium(2024년 5월)을 거쳤다. 7세대 Ironwood는 2025년 4월 9일 구글 공식 블로그에서 공개됐고, 추론 전용으로 설계된 첫 TPU다. 칩당 4,614 TFLOPS(FP8 기준), 최대 9,216개 칩 슈퍼포드 구성이 공식 발표에 적혀 있다. 8세대는 2026년 4월에 학습용 8t와 추론용 8i로 나뉘어 등장했다. 10년 동안 칩은 내부용에서 시작해, 학습과 추론을 나누는...

100나노미터 먼지가 몸 깊숙이 들어간다 — 퍼서비어런스가 본 화성의 진짜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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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사람을 보낸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대개 로켓이다. 큰 로켓, 긴 비행, 붉은 땅에 내리는 장면. 그런데 퍼서비어런스가 화성에서 직접 확인한 것은, 로켓보다 먼저 풀어야 할 문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일 수 있다는 점이다. 로켓은 사람을 데려다주지만, 도착한 뒤의 생활은 먼지와의 싸움이 될 수 있다. 먼저 각도를 분명히 하자. 이 글은 퍼서비어런스의 주행 기록 얘기가 아니다. 로버가 얼마나 멀리 달렸는지가 아니라, 로버에 달라붙은 먼지를 잰 얘기다. 그 먼지의 크기와 성질이, 앞으로 화성에 갈 사람들의 우주복과 서식지, 건강 기준을 어떻게 바꿀지를 다룬다. 거리 기록과 먼지 측정은 같은 로버의 이야기지만, 묻는 질문이 전혀 다르다. 측정은 1,645 화성일 이상에 걸쳐 이뤄졌다. 화성일, 즉 솔로 세면 1,645솔이 넘는 시간 동안 퍼서비어런스는 로버에 실린 우주복 소재 샘플에 달라붙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측정했다. 그중에는 폐 깊숙이 들어가 혈류로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입자도 있었다. 하루 이틀의 스냅사진이 아니라, 1,645솔 넘게 쌓인 기록이라는 점이 이 측정을 특별하게 만든다. 측정 도구는 뜻밖의 곳에 있었다. 우주복 소재 샘플 5장, 각 약 20밀리미터 정사각형이 SHERLOC 교정 타깃의 일부로 퍼서비어런스 로봇팔에 탑재돼 있었다. NASA는 이 조각들을 화성 표면에서 우주복 소재가 얼마나 버티는지 보려고 보냈다. 또 다른 기기 PIXL의 교정 타깃에는 테플론과 현무암 유리 샘플이 있었다. 본래 목적은 기기를 교정하는 것이었는데, 그 조각들이 먼지의 증거를 품고 있었다. 여기서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테플론은 PIXL이 직접 검출할 수 있는 원소를 포함하지 않는다. 그래서 테플론 샘플에서 잡히는 원소 신호는, 그 위에 앉은 먼지에서 온 것이다. 교정용으로 보낸 조각이 그대로 먼지 측정기가 된 셈이다. 따로 먼지 측정기를 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장비가 먼지의 기록장이 됐다. 숫자부터 보자. 이전 화성 측정에...

2년짜리 위성이 22년을 일했다 — 감마선 폭발 사냥꾼 스위프트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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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항공우주국 NASA가 2026년 10월 23일, 닐 게럴스 스위프트 관측 위성의 과학 임무 종료를 발표했다. 2년을 일하라고 쏘아 올린 위성이 22년을 일하고 물러난 것이다. 처음 계획의 10배가 넘는 시간이다. 스위프트는 감마선 폭발을 잡는 위성이다. 감마선 폭발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폭발로 꼽힌다. 문제는 이 폭발이 너무 빨리 사라진다는 점이다. 어떤 폭발은 2초도 안 돼 절정에 이르고, 곧바로 어두워진다. 큰 지상 망원경이 방향을 돌릴 새도 없이 흔적이 식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스위프트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설계됐다. 폭발을 스스로 감지하고, 위치를 계산하고, 망원경을 그 방향으로 돌리는 일을 알아서 한다. 폭발을 잡는 데 보통 1분쯤 걸렸다. 동시에 폭발 위치를 다른 천문대에 알려, 전 세계 망원경이 뒤를 이어 관측할 수 있게 했다. 혼자 보는 위성이 아니라, 모두의 관측을 여는 문지기 같은 존재였다. 대표 장면은 2005년 5월의 일이다. GRB 050509B라는 폭발은 단 0.03초 만에 지나갔다. 스위프트는 재빨리 돌아서 X선 광자 11개를 잡아냈다. 짧은 감마선 폭발의 잔광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전까지는 짧은 폭발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 이론만 있었다. 이 관측은 짧은 폭발이 중성자별 두 개가 합쳐질 때 생긴다는 오랜 가설을 떠받치는 증거가 됐다. 스위프트의 일은 감마선 폭발에서 그치지 않았다. 22년 동안 감마선 폭발 2,000개 이상을 관측했고, 초신성 1,400개 이상을 연구했다. 블랙홀에 찢기는 별, 활발하게 움직이는 은하, 하늘 전체를 훑은 X선 탐사, 소행성과 혜성까지 살폈다. 데이터가 쓰인 논문은 약 7,000편에 이른다. 하나의 위성이 남긴 기록으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규모다. 이 위성이 오래 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유연한 운영 방식이다. 지상에서 보낸 명령으로 몇 분 만에 관측 목표를 바꿀 수 있었고, 하루에 최대 75개까지 서로 다른 목표를 살펴볼 수 있었다. 갑자기 터진 사건이 있으면 기다리지 않...

수백 편 논문의 전제가 흔들린다 — AI의 지수 시간 가설 반박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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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나 컴퓨터과학 논문에는 종종 "이 가정이 참이라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 단서 위에 수백 편의 결과가 쌓였다. 그런데 그 단서 자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것도 사람이 아니라 AI가 낸 증명으로. 주인공은 지수 시간 가설, ETH다. 3-SAT이라는 문제를 얼마나 빨리 풀 수 있는지에 대한 가설이다. 3-SAT은 참·거짓 조건들의 집합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다. 변수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경우의 수는 두 배가 된다. ETH는 이 문제를 지수 시간보다 의미 있게 빠르게 풀 수는 없다고 말한다. P 대 NP 문제와도 깊이 연결된, 오래 믿어온 규칙이다. 연구자들은 이 가설을 발판으로 삼았다. 그래프 이론, 계산 생물학, 데이터베이스, 계산 기하학 등에서 "ETH가 참이라면 이 작업은 이보다 빨라질 수 없다"는 조건부 한계 결과를 수백 편이나 도출했다. 전제가 튼튼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TH는 수십 년 전 임팔리아초·파투리·제인이 제안한 뒤, 컴퓨터과학의 표준 도구로 자리 잡았다. P 대 NP 문제 자체는 여전히 열려 있지만, ETH는 그보다 강한 가정을 이용해 구체적인 문제마다 한계를 그을 수 있게 해줬다. 그래서 ETH는 '믿어지는 가설'이자 '일하는 가설'이었다. 증명이 아니라 전제로 쓰이면서도, 아무도 그 전제를 직접 흔들지 못했던 것이다. 2026년 10월 26일, OpenAI가 발표했다. 자사 내부 모델이 세 가지 결과를 만들었다고 했다. 수학의 국소 평활 추측 증명, 컴퓨터과학의 ETH 반박, 물리학의 양자색역학과 표준모형 완성에 대한 존재 증명이다. 오늘 이야기는 그중 두 번째, ETH 반박이다. 시간 순서가 흥미롭다. 모델이 ETH 반박의 자연어 원고를 만든 건 10월 16일, Lean이라는 증명 보조 도구로 형식화한 건 다음 날인 10월 17일이다. 자연어 원고와 Lean 증명은 모두 GitHub에 공개돼 있다. Lean 문서에 따르면, 형식...

거울 분자 중 한쪽만 골라내는 법 — 100년 수수께끼를 푼 노벨 화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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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손 장갑을 오른손에 끼워 본 적 있나요. 모양은 똑같은데,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분자 세계에도 이런 장갑이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가 뒤집힌 쌍둥이 분자인데, 겉모습은 같아도 몸 안에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합니다. 화학자들은 이런 분자를 키랄 분자라고 부르고, 거울상 쌍둥이를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부릅니다. 이름부터가 그리스어로 '손'을 뜻합니다. 향기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렌지 향을 내는 분자와 레몬 향을 내는 분자는 거울상 쌍둥이입니다. 같은 원자, 같은 연결 방식인데 손잡이만 다릅니다. 코는 그 차이를 향으로 구분합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속 수용체는 자물쇠처럼 한쪽 손잡이에만 맞는 열쇠를 기다립니다. 반대쪽 열쇠는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가도 다른 문을 엽니다. 같은 분자라도 손잡이가 바뀌면 몸이 받는 신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약 회사는 거울상 쌍둥이를 처음부터 따로 다루는 데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생명은 이 쌍둥이 중 한쪽만 씁니다. 우리 몸의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은 거울상 두 가지로 존재할 수 있지만, 세포 속 단백질에는 한쪽만 들어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자연에서 드물게 발견됩니다. DNA를 만드는 당도 한쪽 손잡이로 통일돼 있습니다. 화학자들은 이 한쪽 손잡이 성질을 동종키랄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어로 '같은'과 '손'을 합친 말입니다. 그런데 시험관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거울상 두 가지를 만들 수 있는 반응을 돌리면, 언제나 반반씩 나왔습니다. 왼쪽 장갑과 오른쪽 장갑이 똑같은 수로 쏟아지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떻게 한쪽만 골라 쓰게 됐을까요. 이 질문은 100년이 넘도록 화학자들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실마리의 시작은 19세기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스퇴르는 포도주 찌꺼기에서 얻은 주석산 결정이 거울상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정 모양이 서로 거울상이고, 빛을 비트는 방향도 반대였습니다. 분자에도 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때...

돈을 달라고 하기 전에 멈추게 하는 법 — 폰 안에서 도는 사기 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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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번호에서 온 메시지 한 통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안부처럼 보입니다. 며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투자 이야기, 급한 송금 이야기가 나옵니다. 링크를 누르지 않았는데도 당했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사기는 링크가 아니라 대화로 다가옵니다. 사기꾼이 링크를 안 보내고 말을 걸어올 때, 누가 그 말을 알아챌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싱가포르에서 나온 답이 하나 있습니다. 대화를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 폰 안에서 직접 살펴보는 탐지기 이야기입니다. 싱가포르의 상황부터 보겠습니다. 구글 딥마인드가 2026년 10월 14일 공식 블로그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사기는 신고 범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2019년 이후 피해는 40억 싱가포르달러를 넘었습니다. 투자 사기, 가짜 구인, 공직자 사칭 같은 이름들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숫자가 말해 주는 것은 규모만이 아닙니다. 수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의 사기는 낯선 링크 하나가 전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눌렀는지 안 눌렀는지가 갈림길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공격자는 설득력 있는 대화를 먼저 쌓습니다. 신뢰를 만들고, 급박함을 만들고, 돈을 요구하는 순간은 맨 마지막에 옵니다. 딥마인드 발표에 따르면 이런 사회공학적 사기가 전체 피해의 최대 80%를 차지합니다. 메시지 한 통만 떼어 놓고 보면 수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맥락 전체를 봐야 조종이 보입니다. 그래서 범용 탐지기가 자주 빗나갑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키워드 몇 개로는 현지 사칭을 잡기 어렵습니다. 싱가포르의 어느 기관을 사칭했는지, 어느 은행 이름을 빌렸는지, 지역에서 지금 유행하는 수법이 무엇인지 모르면, 그 대화는 그냥 평범한 잡담처럼 보입니다. 탐지기가 봐야 할 것은 단어가 아니라 대화의 흐름입니다. 구글 딥마인드와 싱가포르 정부기술청이 함께 만든 모델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했습니다. 구글의 경량 모델인 Gemma를 싱가포르 현지 ...

누가 썼는지가 아니라 누가 생각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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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로 글을 다듬은 적 있으신가요. 문장은 내가 썼는데, 탐지기는 AI가 썼다고 판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AI가 짜준 개요를 보고 직접 글을 쓰면, 탐지기는 사람 글이라고 통과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탐지기가 보고 있는 것은 문장이지, 생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간극은 이제 규칙의 문제로 번지고 있습니다. 학회와 학교의 규정은 점점 "AI가 문장을 썼는가"가 아니라 "AI가 아이디어를 냈는가"를 묻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문장을 다듬는 데 AI를 쓰는 것은 신고만 하면 허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디어 자체를 AI에게 맡기고 자기 것인 양 제출하는 것은 다른 문제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탐지기는 이 둘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탐지기가 등장했습니다. 메릴랜드대학교와 구글 딥마인드,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 연구진이 10월 5일 공개한 연구의 주인공은 아이디어렌즈(IdeaLens)입니다. 묻는 질문이 다릅니다. 누가 문장을 썼는지가 아니라,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입니다. 방법은 단순하면서도 영리합니다. 글을 통째로 읽는 대신, 글의 뼈대만 뽑아냅니다. 각 단락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짧게 바꿔 쓴 개요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두 번째 근거로 실험 결과를 든다" 같은 식입니다. 이렇게 문체를 걷어내면 남는 것은 아이디어의 흐름뿐입니다. 탐지기는 그 흐름을 보고 판단합니다. 지문을 대조할 때 잉크의 색이 아니라 손가락의 무늬를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학습에는 웹 문서 약 100만 개가 쓰였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합니다. 이 문서들의 정답 라벨은 사람이 직접 매긴 것이 아니라, 기존 문장 탐지기인 팽그램이 추정한 것입니다. 연구진도 이를 실버 라벨이라고 부릅니다. 출발점 자체가 추정치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개요로 바꾼 뒤에는 문체 정보가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탐지기는...

배터리 후보를 다시 찾아낸 AI — 아직 실험실에서 만든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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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과학자에게 "이런 성질이면 돼"라고 말로 시키면, AI가 결정 구조를 보고 골라낼 수 있을까. MIT 연구진이 최근 내놓은 연구는 그 질문에 한 걸음 다가간 답입니다. 원리는 간단해 보입니다. AI에게 결정의 3차원 구조를 '보여주고', 그 구조를 말로 설명하는 법까지 함께 가르친 것입니다. MIT 뉴스는 이 이상을 저녁 주문에 비유했습니다. 과학자가 원하는 성질을 말하면 AI가 딱 맞는 결정을 내어주는 세상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그게 잘 안 됩니다. 문제는 모델이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데이터에 있습니다. 재료과학의 세계는 글로만 적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고체 재료는 결정입니다. 지구 고체 재료의 90퍼센트 이상이 결정질이라고 MIT 뉴스는 전합니다. 그런데 결정 구조는 특수한 포맷으로 저장된 3차원 주기 데이터라, 텍스트 위주로 학습한 대형 언어 모델이 그대로 읽지 못합니다. 게다가 실험 문헌도 몇몇 인기 있는 결정 종류에 편중돼 있어, 논문 텍스트만으로 배운 AI의 답도 그쪽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AI는 결정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채로 결정에 대해 글을 읽어 온 셈입니다. 왜 구조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재료과학에서 구조는 성질의 뿌리입니다. 같은 원자로 이뤄져도 원자가 어떻게 배열되고 결합하느냐에 따라 굳기, 전도성, 안정성이 달라집니다. Ju Li 교수는 이를 두고 "구조는 재료과학 분야의 핵심입니다. 구조를 이해하면 성질과 성능을 꽤 많이 추론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조를 모르고 재료의 성능을 논하는 것은, 설계도를 보지 않고 건물의 튼튼함을 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AI는 이미 결정 탐색의 방식을 바꿔 왔습니다. 새로운 결정 구조를 제안하고 설계하는 모델들이 등장했고, 대부분은 결정을 3차원 그래프로 취급했습니다. 원자를 점으로, 결합을 선으로 그려서 배우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대형 언어 모델의 시대가 오면서...

양자컴퓨터의 90퍼센트 병목을 깨뜨린 방법 — Willow 매직스테이트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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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따라붙는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계산 도중에 생기는 오류가 너무 잦다는 거예요. 그런데 구글 연구진이 지난 10월 15일, 과학 저널 Science에 이 오류 문제의 가장 비싼 대목 하나를 크게 줄인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무대는 구글이 만든 초전도 양자 프로세서 Willow예요. 105개의 큐비트를 가진 이 칩 위에서, 양자컴퓨터의 '병목'을 푸는 열쇠로 꼽혀 온 매직스테이트라는 것을 이론 속 방법이 아닌 실제 기계로 처음으로 길러 낸 거예요. 먼저 배경을 짧게 짚어 볼게요. 양자컴퓨터의 계산 단위인 큐비트는 아주 예민해서, 주변의 작은 진동이나 온도 변화에도 계산이 쉽게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여러 개의 물리 큐비트를 하나로 묶어 서로 감시하게 만드는 '오류 정정'이 필수인데, 이렇게 묶인 하나의 단위를 논리 큐비트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 감시 체계 안에서도 유독 만들기 어려운 연산이 따로 있다는 점이에요. 그 어려운 연산을 가능하게 해 주는 특별한 재료가 바로 매직스테이트입니다. 매직스테이트는 쉽게 말하면 양자 계산의 '마법 재료' 같은 것입니다. 오류 정정만으로는 고전 컴퓨터가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운데, 이 재료를 한 번 써넣을 때마다 양자컴퓨터다운 진짜 계산이 가능해지거든요. 다만 한 번 쓰면 사라지는 소모품이라 계산 내내 계속 만들어 공급해야 하고, 순도가 조금만 낮아도 계산 전체가 흔들립니다. 필요한 양도 만만치 않아요. 유용한 계산일수록 이런 재료가 수없이 들어가기 때문에, 양자 알고리즘의 비용은 사실상 이 재료를 몇 개 쓰느냐로 헤아려진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결국 양자컴퓨터의 실력은 이 재료를 얼마나 싸고 깨끗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에요. 이름에 '마법'이 붙은 것도, 이 재료를 손에 넣는 순간 계산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뜻에서 연구자들이 붙인 별명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그 비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표준 방법...

로그인 없이 뚫리는 서버, PHP 긴급 패치 — 사이트 운영자라면 오늘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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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은 전 세계 웹사이트 운영자들에게 유난히 바쁜 하루였습니다. 우리가 매일 여는 수많은 웹사이트를 뒤에서 움직이는 토대 언어, PHP에서 심각한 보안 결함이 발견돼 긴급 수정판이 나왔고, 일부 나라에서는 정부 웹사이트가 예방 차원에서 아예 문을 닫기도 했거든요. PHP가 무엇인지부터 짚어 볼게요. 화면 뒤에서 PHP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돌아가는 웹사이트는 생각보다 아주 많습니다. 1995년에 처음 등장한 이 오래된 언어는 워드프레스로 만든 블로그와 쇼핑몰, 드루팔, 그리고 위키백과를 움직이는 미디어위키까지,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실 같은 자리에서 웹의 상당 부분을 떠받치고 있어요.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특정 프로그램이 아니라 PHP 엔진 자체에 숨어 있던 메모리 안전 결함 두 건(CVE-2026-109618, CVE-2026-109619)입니다. 연구자들이 두 결함을 묶어 PHP2Shell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쉽게 말하면 이런 모습이에요. PHP가 방문자의 요청을 처리하다가 메모리가 부족해 일이 중간에 끊기면, 반쯤만 만들어진 내부 데이터가 정리되지 않은 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뒷정리 과정이 그 데이터를 멀쩡한 것으로 착각하거나, 이미 비워진 메모리를 가리키는 낡은 상태가 다음 방문자의 요청에 그대로 재사용되면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무서운 지점은 공격의 조건입니다. 공격자는 로그인을 할 필요가 없고, 웹사이트 자체의 코드가 아무리 깔끔하게 짜여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함이 그 아래층인 엔진에 있으니까요. 보안 회사 Wiz는 최신 워드프레스와 드루팔, 줌라 환경에서 로그인 없이 서버에서 임의의 코드를 실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고, 코드 실행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버 메모리에 남아 있는 비밀번호나 인증 토큰, API 키 같은 민감한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해당 기능을 쓰지 않는 사이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에요. 심각도를 매기는 국제 점수(CVSS)로는 10점 만점에 9.2점,...

AI가 설계한 단백질 31만 개, 전갈 독에 붙은 건 17개였다 — 클로드의 해독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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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갈에 쏘이는 일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앤트로픽이 연구 배경으로 인용한 수치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20만 명 이상이 전갈에 쏘이고 3,250명 이상이 목숨을 잃습니다. 피해는 의료 시설에 닿기 어려운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집중됩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는 '소외 열대질환'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돈이 되는 시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해독제는 오래된 방식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말에게 전갈 독을 조금씩 면역시킨 뒤, 그 혈액에서 항체를 정제하는 방식입니다.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리고 비싼 데다, 효과가 닿는 독의 종류도 일부에 그칩니다. 전갈의 종이 다르면 독의 성분도 달라서, 어느 지역의 해독제가 다른 지역의 독에는 듣지 않는 일도 흔합니다. 종류마다 따로 만들어야 하는 약을,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입니다. 지난 10월 20일, AI 회사 앤트로픽이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하나 발표했습니다. 자사의 AI 클로드가 전갈 독에 달라붙는 단백질, 이른바 '바인더'를 직접 설계했고, 그중 일부가 실제 실험실에서도 독에 붙는 것이 확인됐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한 간극이 하나 보입니다. AI가 설계한 단백질은 31만 개가 넘는데, 실험실에서 실제로 붙은 건 17개뿐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적었을까요. 그리고 고작 17개가, 왜 그래도 의미 있는 결과로 평가받는 걸까요. 먼저 클로드가 한 일부터 보겠습니다. 앤트로픽 연구팀은 사내 연구 환경인 '클로드 사이언스'에서 내부 연구용 클로드에게 과제를 맡겼습니다. 처음에 준 지시는 한 번뿐이었고, 첫 하루는 그 지시만으로 혼자 돌았습니다. 이후에 사람이 방향을 잡아 준 후속 지시가 네 번 있었고, 그렇게 약 64시간 동안 클로드는 대체로 혼자 일했습니다. 12가지 단백질 설계 도구를 오가며 설계안 318,484개를 만들었고, 설계와 독을 짝지은 553,052개...

지워야 할 노이즈가 새 혜성이었다 — 암흑우주를 찍던 망원경의 우연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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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유럽우주국 ESA가 재미있는 소식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연구하려고 만든 우주망원경 유클리드가,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새 혜성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혜성의 공식 이름은 C/2026 S1 (Euclid). 유클리드가 이전에도 혜성을 사진에 담은 적은 있지만, 전부 이미 알려진 혜성들이었고, 스스로 '발견'한 혜성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는 얼굴을 다시 찍은 것과, 아무도 몰랐던 얼굴을 처음 찾아낸 것은 전혀 다른 일이죠. 이름 뒤에 붙은 (Euclid)라는 표시가 바로 그 발견의 증표입니다. 그런데 이 발견에는 묘한 반전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유클리드는 애초에 혜성을 찾으러 간 망원경이 아닙니다. 오히려 혜성이 많은 하늘은 일부러 피해서 다니도록 설계됐죠. 피하려고 설계된 망원경이 어떻게 첫 혜성을 찾았을까요. 답은 '발견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지워 버려야 한다'는 필요에 있었습니다. 유클리드의 본업부터 짚어 보죠. 이 망원경은 6년에 걸쳐 수십억 개의 은하를 관측해, 100억 광년 거리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우주 지도를 만드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은하들이 우주 공간에 어떻게 분포하고, 그 배치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거꾸로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하가 몰려 있는 자리와 비어 있는 자리의 패턴 자체가 보이지 않는 물질이 남긴 흔적인 셈이죠. 그러려면 사진 한 장 한 장이 아주 깨끗하고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흐릿하거나 흔들린 사진으로는 수십억 개 은하의 위치를 지도에 정확히 찍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유클리드는 태양계 안쪽의 풍경을 일부러 피합니다. 행성들이 놓인 평면의 띠에는 소행성과 혜성이 몰려 있고, 햇빛을 받아 빛나는 먼지 빛도 은하 관측을 방해합니다. 게다가 유클리드는 '스텝 앤 스테어'라는 방식으로 하늘을 찍습니다. 한 영역을 한 번 찍고 다음 ...

15년 걸린 거리를 5년 반 만에 — 퍼서비어런스, 지구 밖 주행 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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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에 있는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가 조용한 기록 하나를 갈아치웠습니다. 지난 10월 11일은 퍼서비어런스가 화성에서 보낸 2,006번째 하루, 임무 용어로는 2,006솔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퍼서비어런스의 누적 주행 거리가 28.10마일, 45.22킬로미터에 닿으면서 오퍼튜니티가 남긴 28.06마일, 45.16킬로미터를 넘어섰습니다. NASA는 그다음 날인 10월 12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궤도를 도는 탐사선의 비행 거리와는 다른, 행성 표면을 바퀴로 직접 굴러간 누적 거리 기준으로는 인류가 세운 가장 긴 기록입니다. 재미있는 건 추월의 폭입니다. 두 로버를 가른 차이는 약 60미터에 불과합니다. 기록을 넘긴 그날 퍼서비어런스가 달린 거리는 91.31미터였습니다. 오퍼튜니티의 기록은 2018년 그 임무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거의 15년에 걸쳐 쌓인 기록이 하루치 주행 한 번으로, 그것도 간발의 차이로 조용히 바뀐 셈입니다. 기록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씩의 평범한 주행이 수천 번 쌓인 결과입니다. 퍼서비어런스도 2,006솔 동안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그 누적의 끝이 하필이면 60미터 차이의 추월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기록은 속도 자랑이라기보다, 화성에서 보낸 하루하루의 합계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진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오퍼튜니티가 이 거리를 쌓는 데는 거의 15년이 걸렸습니다. 퍼서비어런스는 약 5년 반 만에 따라잡고 넘어섰습니다. 같은 화성, 바퀴 여섯 개를 단 비슷한 몸집의 로버인데 왜 세 배 가까이 빨랐을까요. 바퀴가 더 튼튼해서도, 동력이 더 세서도 아닙니다. 답은 운전 방식에 있었습니다. 옛날 방식부터 보겠습니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쓰던 1세대 자동 항법은 전체 주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5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주행은 지구에 있는 운영팀의 판단으로 이뤄졌습니다. 로버가 멈춰...

사람이 타기 전, 로봇이 먼저 탄다 — 인도 유인 우주비행 G1의 조용한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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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조용한 소식이 하나 나왔습니다. 지난 10월 16일, 인도우주연구기구 ISRO가 유인 우주선 가간얀의 승무원 모듈과 서비스 모듈 분리 시험을 마쳤다고 발표했고, 이 소식을 ANI 통신이 전했습니다. 화려한 발사 장면이 아니라 '떨어져 나오는 장면'의 시험이 뉴스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주선은 보통 하나의 덩어리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는 우주선은 돌아올 때 그 모습이 아닙니다. 절반을 잘라 버리고, 사람이 탄 작은 캡슐만 지구로 돌아옵니다. 지구로 돌아오려면, 왜 우주선의 절반을 버려야 할까요. 이 질문이 이 글의 중심이고, 분리 시험이 유인 우주비행의 진짜 관문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캡슐만 돌아오는 방식은 가간얀만의 선택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사람을 태워 보낸 나라들의 캡슐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이 앉는 부분은 작게 만들고, 나머지는 궤도에서 일을 마친 뒤 떼어 내는 것.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이 설계가 인도의 첫 유인 우주선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도는 지금 그 방식을 남의 기록이 아니라 자기 시험으로 처음부터 쌓는 중이라는 점입니다. 가간얀의 궤도 모듈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사람이 타는 승무원 모듈과, 전력과 추진, 각종 지원을 맡는 서비스 모듈입니다. 두 모듈은 분리 시스템과 전선·배관을 주고받는 엄빌리컬이라는 연결선으로 묶여 있어서, 발사부터 궤도 운용까지는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하지만 대기권 재진입 직전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임무를 마친 서비스 모듈은 무겁고, 재진입의 열을 견딜 방열판도 없습니다. 끝까지 데려갈 수 없는 동행자인 셈이라, 승무원 모듈만 떼어 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서비스 모듈이 궤도에서 하는 일을 놓고 보면 이별이 더 분명해집니다. 궤도에 머무는 동안 필요한 전기를 만들고, 자세와 궤도를 바꾸는 추진을 맡고, 사람이 타는 쪽에 필요한 지원을 계속 보내는 것이 서비스 모듈의 몫입니다. 전부 '궤도에 머물...

화성의 달은 어디서 왔을까 — 10그램이 답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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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는 달이 두 개 있습니다. 포보스와 데이모스. 그런데 이 두 달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지나가던 소행성이 화성의 중력에 붙잡힌 것인지, 오래전 거대한 충돌로 화성에서 튀어나온 파편이 뭉친 것인지, 두 가설이 수십 년째 맞서고 있습니다. 망원경 사진과 궤도 관측만으로는 끝내 갈리지 않던 논쟁에, 이제 실물이 답하러 갑니다. 2026년 10월 20일 새벽 4시 41분, 일본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H3 로켓 10호기가 화성 위성 탐사선 MMX를 싣고 떠올랐습니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JAXA는 로켓이 계획대로 비행했고, 발사 약 71분 뒤 탐사선이 분리돼 예정된 궤도에 들어갔다고 발표했습니다. 화성계, 즉 화성과 그 위성들을 통틀어 부르는 영역에서 샘플을 가져오는 시도는 인류 역사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포보스와 데이모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의 아들들인 '공포'와 '전율'에서 왔습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물은 작습니다. 포보스는 지름이 약 22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천체입니다. 감자처럼 울퉁불퉁한 이 작은 달의 정체를 가르는 열쇠는 겉모습이 아니라 성분입니다. 붙잡힌 소행성이라면 탄소가 많은 원시적인 소행성의 성분을 닮아 있을 것이고, 화성에서 튀어나온 파편이라면 화성 암석의 흔적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지구의 실험실로 실물을 가져와 동위원소까지 정밀하게 재면, 사진 수만 장으로도 못 가른 문제가 한 번에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표 샘플량은 최소 10그램, 두 곳에서 나눠 채취하는 것으로 잡혀 있습니다. 적어 보이지만, 최첨단 분석 장비 앞에서는 10그램이면 출신을 가리기에 충분한 양입니다. 포보스라는 무대 자체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달은 화성 표면에서 약 6,000킬로미터 높이에서 7시간 39분 만에 화성을 한 바퀴 돕니다. 화성 자체의 자전보다 빠르게 도는 셈입니다. 중력은 지구의 약 0.1퍼센트 수준이라, 사람이 서면 가볍게 뛴 것만으로 1킬로미터 넘게 날아갈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