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후보를 다시 찾아낸 AI — 아직 실험실에서 만든 건 아닙니다
재료과학자에게 "이런 성질이면 돼"라고 말로 시키면, AI가 결정 구조를 보고 골라낼 수 있을까. MIT 연구진이 최근 내놓은 연구는 그 질문에 한 걸음 다가간 답입니다. 원리는 간단해 보입니다. AI에게 결정의 3차원 구조를 '보여주고', 그 구조를 말로 설명하는 법까지 함께 가르친 것입니다. MIT 뉴스는 이 이상을 저녁 주문에 비유했습니다. 과학자가 원하는 성질을 말하면 AI가 딱 맞는 결정을 내어주는 세상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그게 잘 안 됩니다. 문제는 모델이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데이터에 있습니다. 재료과학의 세계는 글로만 적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고체 재료는 결정입니다. 지구 고체 재료의 90퍼센트 이상이 결정질이라고 MIT 뉴스는 전합니다. 그런데 결정 구조는 특수한 포맷으로 저장된 3차원 주기 데이터라, 텍스트 위주로 학습한 대형 언어 모델이 그대로 읽지 못합니다. 게다가 실험 문헌도 몇몇 인기 있는 결정 종류에 편중돼 있어, 논문 텍스트만으로 배운 AI의 답도 그쪽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AI는 결정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채로 결정에 대해 글을 읽어 온 셈입니다.
왜 구조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재료과학에서 구조는 성질의 뿌리입니다. 같은 원자로 이뤄져도 원자가 어떻게 배열되고 결합하느냐에 따라 굳기, 전도성, 안정성이 달라집니다. Ju Li 교수는 이를 두고 "구조는 재료과학 분야의 핵심입니다. 구조를 이해하면 성질과 성능을 꽤 많이 추론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조를 모르고 재료의 성능을 논하는 것은, 설계도를 보지 않고 건물의 튼튼함을 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AI는 이미 결정 탐색의 방식을 바꿔 왔습니다. 새로운 결정 구조를 제안하고 설계하는 모델들이 등장했고, 대부분은 결정을 3차원 그래프로 취급했습니다. 원자를 점으로, 결합을 선으로 그려서 배우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대형 언어 모델의 시대가 오면서 다른 길이 열렸습니다. 말로 시키는 대로 추론하는 유연함입니다. 문제는 이 언어 모델들이 출판된 논문과 책의 텍스트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잠재적인 결정 구조 중 상당수는 계산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있어 논문 텍스트에는 없습니다. 텍스트 기반 모델은 시각적 기하 감각도 없습니다. 그래서 연구팀은 결정질 재료를 위한 시각-언어 모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MIT 재료과학공학부의 Ju Li 교수 연구팀이 그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제1저자는 Yang Jeong Park 전 MIT 박사후연구원이고, Mayank Kumaran, Chia-Wei Hsu, Elsa Olivetti 교수가 함께했습니다. 논문은 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고, 모델 이름은 CLaC, 즉 대조 언어-결정 모델입니다. 3차원 결정 원자 구조와 자연어 설명을 하나로 묶어 배우는 모델입니다.
핵심 장치는 '합성 서사'입니다. 연구팀은 기존 논문 텍스트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연구 논문과 제1원리 계산 데이터베이스에서 AI가 결정 구조에 대한 텍스트 설명을 직접 생성해 학습시켰습니다. 이 설명은 조성과 구조만 적는 것이 아니라 성질, 가공할 때의 고려 사항, 잠재적인 응용까지 담은 통합 서사입니다. 결정 하나하나에 대해 교과서 한 단락씩을 AI가 새로 써낸 뒤, 그걸 교재 삼아 공부한 셈입니다. 가공 고려 사항이 들어간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학습 방식은 대조 학습입니다. 비슷하거나 다른 구조와 설명의 쌍을 비교하면서, 구조와 언어의 통합 이해를 구축하는 방식입니다. 연구팀은 이를 뇌의 시각 영역과 언어 영역을 맞추는 일에 비유했습니다. 그림을 보고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듣고 그림을 떠올리는 연습을 반복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논문 초록은 이 과정을 "성질 조건에 맞춘 합성 서사로 사전 학습한" 대조 학습 틀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설명에는 그 결정이 어떤 성질을 갖는지까지 조건으로 들어가 있어, 구조와 성질과 언어가 한 묶음으로 배워집니다.
검증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AI가 만든 설명으로 학습한 모델은 기하 구조와 텍스트 설명을 맞추는 법을 배웠지만, 논문 텍스트만으로 학습한 모델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연구팀은 두 버전의 모델을 나란히 비교했습니다. 하나는 AI 생성 설명을 담은 데이터셋으로, 다른 하나는 논문 텍스트만 담은 데이터셋으로 학습시켰습니다. 결과는 전자만 구조와 설명을 정렬하는 법을 익혔다는 것입니다. 기존 학술 말뭉치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의미 정렬이 합성 서사에서는 가능했다는 것이 논문 초록의 표현입니다.
이어서 연구팀은 자연어로 원하는 특성을 설명하는 질의를 모델에 주었습니다. 모델은 그 특성을 가진 결정질 재료를 골라냈고 베이스라인을 능가했습니다. 논문 초록은 이를 지시 기반·제로샷 추론의 토대가 되는 결과라고 표현합니다. 따로 가르치지 않은 질의에도 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뜻입니다. 과학자가 "전고체 배터리 전해질로 쓸 만한, 이온은 잘 통하고 전자는 안 통하는 재료"처럼 조건을 말로 적으면, 모델이 그 조건에 맞는 결정을 추려내는 그림입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모델 내부의 표현 공간 분석입니다. 논문 초록에 따르면, 언어와 결정 구조 사이의 구조화된 연관성이 임베딩 공간에서 드러났습니다. 말이 구조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성질을 가진 결정들이 언어 표현에서도 가까이 모인다는 뜻입니다. 모델이 단어를 외운 것이 아니라 구조의 의미를 공간 속에 정리했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눈에 띄는 예시는 전고체 리튬이온 배터리 전해질입니다. 연구팀이 전해질에 맞는 재료를 물었더니, 모델의 상위 결과에 독립적으로 이미 유망 후보로 지목된 재료들이 포함됐습니다. 여기서 구분이 중요합니다. 모델이 새로운 후보를 발굴해 실험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정답을 '회복'한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계산 스크리닝, 즉 컴퓨터로 후보를 가려내는 연구이지, 실험실에서 새 물질을 합성하거나 발견한 연구가 아닙니다. 배터리가 만들어졌다고 읽으면 안 됩니다. 다만 이 회복 자체가 의미가 있습니다. 모델이 구조를 보고 성질을 추론하는 법을 배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Ju Li 교수는 합성 서사 데이터셋으로 학습했을 때 모델이 기능을 더 잘 예측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접근을 단백질 구조와 기능을 연결한 AlphaFold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건 비유일 뿐, "AlphaFold급 정확도" 같은 단정은 아닙니다. AlphaFold가 단백질 세계에서 구조와 기능을 연결했듯이, CLaC이 결정 세계에서 구조와 언어와 성질을 연결하려는 시도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Elsa Olivetti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기대를 내비쳤습니다. 알고리즘 통합이 유용한 도구로 이어지는 단계적 도약이 재료과학에 가끔 있는데, 이 접근이 그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 방식이 많은 결정질 재료에 통하고, 다른 재료과학자들이 써서 연구를 가속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도구가 연구 현장에 퍼지면, 후보를 찾는 시간이 줄고 실험은 더 유망한 후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3차원 결정을 보고 원자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아는 것은 아주 근본적입니다. 재료과학을 하는 누구에게나 유용할 것"이라는 Li 교수의 말도 같은 방향입니다.
남은 숙제도 분명합니다. 모델이 골라낸 후보를 실험실에서 실제로 만들고 검증하는 단계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구조나, 계산 데이터와 실제 가공 조건 사이의 간극도 넘어야 합니다. 규모를 키우고, 더 다양한 재료와 조건에서 통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다음 관문입니다. 이 연구는 미국 국방위협감소국(대학연구연합 경유), DARPA, 한국 국가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텍스트만 읽던 AI가 결정의 3차원 구조를 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작지 않습니다. 재료를 말로 주문하는 미래가 있다면, 그 첫걸음은 AI가 결정의 얼굴을 알아보는 일부터일 테니까요.
데이터 출처: MIT News 'Giving AI a crystal clear view of the materials world'(Zach Winn, 2026년 10월 18일), Nature Communications 논문 'Scaling multimodal materials representation learning with synthetic narratives'(DOI 10.1038/s41467-026-7637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