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분자 중 한쪽만 골라내는 법 — 100년 수수께끼를 푼 노벨 화학상
왼손 장갑을 오른손에 끼워 본 적 있나요. 모양은 똑같은데,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분자 세계에도 이런 장갑이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가 뒤집힌 쌍둥이 분자인데, 겉모습은 같아도 몸 안에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합니다. 화학자들은 이런 분자를 키랄 분자라고 부르고, 거울상 쌍둥이를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부릅니다. 이름부터가 그리스어로 '손'을 뜻합니다.
향기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렌지 향을 내는 분자와 레몬 향을 내는 분자는 거울상 쌍둥이입니다. 같은 원자, 같은 연결 방식인데 손잡이만 다릅니다. 코는 그 차이를 향으로 구분합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속 수용체는 자물쇠처럼 한쪽 손잡이에만 맞는 열쇠를 기다립니다. 반대쪽 열쇠는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가도 다른 문을 엽니다. 같은 분자라도 손잡이가 바뀌면 몸이 받는 신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약 회사는 거울상 쌍둥이를 처음부터 따로 다루는 데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생명은 이 쌍둥이 중 한쪽만 씁니다. 우리 몸의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은 거울상 두 가지로 존재할 수 있지만, 세포 속 단백질에는 한쪽만 들어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자연에서 드물게 발견됩니다. DNA를 만드는 당도 한쪽 손잡이로 통일돼 있습니다. 화학자들은 이 한쪽 손잡이 성질을 동종키랄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어로 '같은'과 '손'을 합친 말입니다.
그런데 시험관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거울상 두 가지를 만들 수 있는 반응을 돌리면, 언제나 반반씩 나왔습니다. 왼쪽 장갑과 오른쪽 장갑이 똑같은 수로 쏟아지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떻게 한쪽만 골라 쓰게 됐을까요. 이 질문은 100년이 넘도록 화학자들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실마리의 시작은 19세기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스퇴르는 포도주 찌꺼기에서 얻은 주석산 결정이 거울상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정 모양이 서로 거울상이고, 빛을 비트는 방향도 반대였습니다. 분자에도 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때 처음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한쪽만 골라 만드는 방법은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953년에는 이론이 먼저 왔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프랭크는 한쪽 손잡이가 저절로 우세해지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한쪽을 돕는 촉매, 한쪽을 키우고 다른 쪽을 누르는 장치, 그리고 생성물이 자기 자신을 만드는 고리입니다. 이론은 있었지만, 실제로 그 고리를 돌려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파스퇴르가 핀셋으로 결정을 하나하나 골라냈던 시대와, 분자가 스스로 한쪽을 고르는 시대 사이에는, 100년이 넘는 간격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결정적 단계는 1986년에 왔습니다. 프랑스의 화학자 앙리 카강은 촉매의 치우침과 생성물의 치우침이 꼭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촉매에 한쪽이 조금 더 들어 있으면, 생성물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기울기가 더 큰 기울기로 증폭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화학자들은 이를 비선형 효과라고 부릅니다.
원리는 짝 맞추기에 있습니다. 금속 촉매는 두 개의 손잡이 분자를 한꺼번에 붙잡습니다. 같은 손끼리 짝을 이룬 경우와 다른 손끼리 짝을 이룬 경우가 생기는데, 다른 손끼리의 짝은 반응을 잘 일으키지 않습니다. 결국 같은 손끼리의 짝이 일을 대부분 해내고, 생성물은 촉매보다 더 순수해집니다. 촉매가 반반에 가까워도, 생성물은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일본의 화학자 소아이 겐소가 밟았습니다. 1995년, 그는 생성물이 자기 자신을 만드는 반응을 설계했습니다. 반응에서 나온 분자가 다음 반응의 촉매가 되는 방식입니다. 이를 자기촉매라고 합니다. 한 번 돌 때마다 한쪽 거울형의 비중이 커졌고, 출발점의 작은 차이 2퍼센트가 87퍼센트까지 자라난 실험이 보고됐습니다. 기울기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스스로를 키우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2003년, 소아이는 마침내 한쪽 거울형만 나오는 반응을 제시했습니다. 처음부터 한쪽을 넣어 주지 않아도, 우연히 생긴 아주 작은 차이가 스스로를 복제하면서 반응 전체를 장악한 것입니다. 노벨상 보도자료는 생명 자체 외에는 아무도 이루지 못한 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반이던 출발점에서 한쪽이 이기는 법이, 시험관 안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셈입니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약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몸과 만나는 분자는 한쪽 거울형만 원하는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한쪽은 효과가 없거나, 심하면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한림원은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잘못된 거울형이 해를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 비극입니다. 약을 만들 때 한쪽만 골라내는 일은 그래서 순도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 연구가 생명의 기원을 밝혀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소아이 반응은 초기 지구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한쪽 손잡이가 어떻게 저절로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형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모형이 주는 힌트는 큽니다. 처음에는 거의 반반이던 차이가, 스스로를 복제하는 고리를 타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줬으니까요.
2026년 10월 7일,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은 올해 노벨 화학상을 카강과 소아이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수상 이유는 비대칭 유기 합성에서의 비선형 효과와 자기촉매의 발견입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100년이 넘는 수수께끼에 대한 해법이라며, 그들이 개발한 반응을 장관이라고 평했습니다. 소아이는 장을 보던 중에 수상 소식을 들었다고 전해졌습니다. 76세의 화학자에게 평생의 연구가 알아봐 준 날이었습니다.
카강에게는 기다림이 길었습니다. 같은 분야의 비대칭 합성 연구로 2001년 노벨 화학상이 다른 세 사람에게 돌아갔을 때, 카강은 수상자 명단에 없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연구장관이 노벨재단에 항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25년이 지나, 95세의 나이에 그는 마침내 같은 무대에 섰습니다. 과학의 인정이 얼마나 더디게 오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한쪽만 골라내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도 짚어 볼 만합니다. 거울상 쌍둥이는 끓는점도, 녹는점도, 웬만한 성질이 거의 같습니다. 섞인 것을 분리하려면 손이 많이 갑니다. 그래서 화학자들은 처음부터 한쪽만 만드는 반응을 찾아왔습니다. 2001년 노벨상도 그 방향의 성과였고, 이번 2026년 노벨상은 그 흐름의 다음 고리를 이은 것입니다.
다만 소아이 반응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이 반응이 잘 작동하는 분자는 아직 특정한 종류에 머물러 있습니다. 모든 거울상 분자에 통하는 만능 열쇠가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의미가 큰 것은, 원리를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한쪽 손잡이가 저절로 우세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우세가 스스로를 키워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화학은 이제 손에 쥔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약 봉투 속에서도 이어집니다. 오늘날 신약을 만들 때 한쪽 거울형만 골라내는 일은 기본 절차가 됐습니다. 거울상 쌍둥이를 구분하고, 한쪽만 만드는 기술이 곧 약의 품질이 되는 시대입니다. 카강의 증폭 원리와 소아이의 자기촉매는 그 기술의 뿌리에 있습니다. 실험실의 수수께끼가 공장의 표준이 된 것입니다.
상상해 볼까요. 만약 생명이 반대쪽 손을 골랐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단백질의 모양이 뒤집히고, 당의 손잡이가 바뀌고, 같은 분자도 다른 향을 냈을지 모릅니다. 그 세계에서는 지금의 약이 듣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한쪽 손잡이는 우연의 결과일 수도 있고, 작은 차이가 커진 필연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답에 이를 수 있는 길이 하나 더 열렸습니다.
작은 차이가 커지는 이야기. 어쩌면 생명의 한쪽 손잡이도, 그렇게 시작됐을지 모릅니다. 반반이던 세상에서 한쪽이 이기는 법을, 두 화학자는 시험관 안에서 보여줬습니다. 손잡이 하나의 차이가 약의 안전을 가르고, 생명의 문법을 가른다는 사실이, 이번 노벨상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인 동시에, 다음 질문을 여는 문이기도 합니다.
출처: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 노벨 화학상 2026 보도자료, 2026-10-07 / 신화통신, 2026-10-08 / 미국화학회(ACS) Axial, 노벨 화학상 2026 해설 / 로이터, 2026-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