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포기한 결정을 고집한 사람들 — 청색 LED 발명사
집 안의 전등도, 손 안의 스마트폰 화면도, 지금은 대부분 LED의 빛으로 켜집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풍경이 완성되기까지, 과학자들은 한 가지 색 앞에서 30년 가까이 막혀 있었습니다. 빨간색 LED는 1960년대부터 있었고 초록색도 뒤를 이었지만, 파란색만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질문은 하나입니다. 파란색만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요.먼저 빛의 삼원색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빨강과 초록, 파랑이 함께 있어야 하얀 빛을 만들 수 있습니다. 노벨재단이 2014년 수상 발표에서 설명한 대로, 적색과 녹색 다이오드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청색이 없이는 백색 램프를 만들 수 없었고, 그래서 청색 LED는 30년 동안 과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조명용 LED라는 기술 자체가 파란색 하나에 발목을 잡혀 있었던 셈입니다.
파란 빛을 만들 후보 재료는 처음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질화갈륨, GaN이라는 반도체입니다. 이론상으로는 파란색에 맞는 재료였지만, 문제는 제대로 된 결정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반도체는 결정을 얼마나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쌓느냐가 성능을 가릅니다. 질화갈륨은 그 결정 성장이 유난히 까다로웠고, 많은 연구자와 기업이 도전했다가 방향을 접은 재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돌파구는 일본 나고야에서 나왔습니다. 아카사키 이사무와 아마노 히로시는 받침이 되는 사파이어 기판 위에 질화알루미늄의 얇은 층을 먼저 깔고, 그 위에 질화갈륨 결정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1986년에 성공시켰습니다. 결정이 자랄 바닥을 먼저 다듬어 준 것입니다. 수십 년 묵은 첫 번째 벽이 이 바닥 작업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벽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반도체에는 전기가 흐르는 성질을 조절하는 p형 층이라는 부분이 필요한데, 질화갈륨에서는 이 층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아카사키와 아마노는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중 전자빔이 닿은 부분에서 수소가 빠져나가며 p형 층이 살아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카무라 슈지는 열을 가하는 방법으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관찰 중의 우연과, 그 우연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확인한 집요함이 두 번째 벽을 넘긴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카무라의 자리도 짚어 둘 만합니다. 그는 대기업 연구소가 아니라 도쿠시마의 중소기업 니치아화학에서 일하며 이 연구를 이어 갔습니다. 큰 연구 조직의 지원을 받는 길이 아니었던 만큼, 모두가 어렵다고 여긴 재료를 붙들고 있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2차 자료들의 정리에 따르면 아카사키와 아마노 측이 1992년에 첫 청색 LED를 선보였고, 나카무라는 1994년에 밝은 고휘도 청색 LED를 시연했습니다.
파란색이 완성되자 풍경은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청색 LED에 형광 물질을 입히면 하얀 빛이 나옵니다. 그렇게 백색 LED 조명이 성립했고, 화면의 백라이트부터 집 안의 전등까지 빛을 내는 방식이 통째로 교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노벨재단은 수상 발표에서 LED 램프의 수명을 백열등 1,000시간, 형광등 10,000시간과 비교해 최대 100,000시간까지 이를 수 있다고 소개했고, 발광 효율 기록도 2014년 당시 기준으로 와트당 300루멘을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숫자들은 재단이 2014년에 제시한 값이라는 점을 함께 적어 둡니다.
효율의 의미는 전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노벨재단은 세계에서 쓰는 전기의 약 4분의 1이 조명에 쓰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조명의 효율이 오르면 그만큼 전기를 아낄 수 있고, 전기가 넉넉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태양광으로 충전한 LED 램프 하나가 밤의 생활을 바꾸기도 합니다. 파란색 하나를 못 만들어 30년을 기다린 기술이, 완성된 뒤에는 전 세계의 전기 지도까지 건드리게 된 것입니다.
2014년, 세 사람은 노벨물리학상을 함께 받았습니다. 상금은 800만 스웨덴크로나를 세 사람이 균등하게 나눴습니다. 재단이 밝힌 수상 사유는 효율적인 청색 LED의 발명으로 밝고 에너지를 아끼는 백색 광원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나카무라는 수상 당시에는 미국 대학에 몸담고 있었지만, 발명 당시의 자리는 니치아화학이었습니다. 세 사람의 발명 무대가 모두 일본이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일본 과학의 집요함을 보여 주는 사례로도 자주 이야기됩니다.
이 발명사를 지금 다시 꺼내는 이유는, 오늘의 반도체 이야기와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론은 맞아도 재료를 원하는 품질로 만드는 일이 수십 년을 붙잡는 풍경, 모두가 접은 방향을 소수가 고집해 결국 길을 여는 풍경은 지금 칩을 만드는 현장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이 블로그에서 다룬 EUV 장비와 첨단 공장의 병목도, 결국은 물리적인 것을 원하는 품질로 만들어 내는 속도의 문제였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미담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 사람의 공을 둘러싼 인정과 보상의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그 논쟁까지 들어가면 오늘의 질문에서 멀어지니, 여기서는 중심만 잡아 두겠습니다. 파란색이 늦은 것은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재료를 다루는 일이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백색 조명은 파란색을 기다려야 했고, 파란색은 결정의 바닥을 다듬는 일과 수소를 빼내는 발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당연하게 켜지는 오늘의 LED 조명은, 30년 동안 풀리지 않던 숙제 위에 서 있습니다. 다음에 전등을 켤 때 그 하얀 빛 안에 파란색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시면, 이 발명사의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출처: 노벨재단 2014년 노벨물리학상 요약 및 보도자료(2014년 10월 7일, 효율·수명·조명 전기 비중은 재단이 당시 제시한 값), Physics World·AIP Inside Science·Asian Scientist의 2014년 수상 해설(1986년 결정 성장과 1992년·1994년 시연 연도는 이들 2차 자료의 정리에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