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대회에서 우승한 AI, 한국 은행 공격에서 발견되다
은행의 고객용 앱은 뚫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격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옆문을 노렸습니다. 대출모집인이 신청 현황을 확인하는 화면, 직원들의 영업 지원 시스템 같은 곳이요. 그 옆문들에서 한국 금융회사 7곳, 약 6만 6천 명에서 6만 8천 명 사이의 개인정보가 새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공격에 쓰인 서버에서는 낯선 중국어 문자열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ARTEX-自主渗透测试控制台', 번역하면 '자율 침투 테스트 콘솔'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알려진 이번 사건은 10월 1일 신한은행의 공시에서 시작됐습니다. 대출모집인이 이용하는 조회 서비스를 통해 고객 약 2만 5천 명의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며칠 사이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BNK부산은행에서도 유출이 알려졌고, 저축은행 쪽 피해가 훨씬 컸습니다. 기관별 규모는 보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종합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 기관 | 유출 규모 (보도 기준) |
|---|---|
| 예가람저축은행 | 고객 약 4만 명 |
| 신한은행 | 고객 약 2만 5천 명 |
| 웰컴저축은행 | 법인 기록 약 2천2백 건 |
| 현대캐피탈 | 대출모집인 146명 |
| KB국민은행 | 고객 119명 |
| 하나은행 | 고객 89명 |
| BNK부산은행 | 계약직 11명 |
유출된 정보에는 이름과 전화번호는 물론 연간 소득과 대출 한도, 일부 주민등록번호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득과 대출 한도는 보이스피싱 같은 2차 범죄에 그대로 악용될 수 있는 정보라 더 걱정스럽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의 발표에서 계좌 비밀번호나 공동인증서, 일회용 비밀번호(OTP) 같은 금융거래 수단의 유출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유출된 정보만으로 예금이 바로 빠져나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진짜로 조심할 건 따로 있습니다. 내 소득과 대출 한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저금리로 갈아타시라'며 접근하는 맞춤형 보이스피싱입니다. 상대가 내 정보를 잘 안다고 해서 진짜 금융회사는 아니라는 점,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공격은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약 12개국, 20개가 넘는 IP를 거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여러 기관에서 비슷한 IP가 포착됐습니다. 다만 피해가 가장 큰 예가람저축은행 건에서는 아르텍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IP도 달라서, 별도의 공격자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도 공격 대상이 됐지만 유출은 없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대가 수사에 나섰고, 공격 주체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아르텍스는 무엇인가
아르텍스는 중국 사이버 보안 엔지니어 리푸화가 만든 오픈소스 AI 도구입니다. 특정 AI 모델 하나를 담은 프로그램이라기보다, 클로드와 GPT, 딥시크 같은 대형 언어 모델들을 연결해 하나의 에이전트처럼 움직이게 만든 도구에 가깝습니다. 표적을 정찰하고, 취약한 로그인 화면을 찾아내고, 공격이 통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자동화합니다.
중요한 건 이 도구의 원래 목적이 해킹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기업과 기관이 자기 네트워크를 먼저 점검해 구멍을 막으라고 만든 방어용 도구였습니다. 지난달 중국에서 열린 공격·방어 에이전트 대회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스코드가 누구나 내려받아 고칠 수 있는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었고, 그 점이 이번에 악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이 알려진 뒤 개발 측은 무단 침입이나 데이터 탈취에 쓰지 말라는 지침을 명시했지만, 한번 공개된 코드에 지침을 붙인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뚫렸나
공격자들이 노린 곳이 눈에 띕니다. 수천만 명이 쓰는 모바일뱅킹 앱은 인증과 감시가 겹겹이 쌓여 있지만, 직원과 협력사가 쓰는 내부 화면은 상대적으로 허술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신한은행 건에서는 다른 곳에서 유출된 아이디와 비밀번호 조합을 자동으로 대입하는 크리덴셜 스터핑이 의심됐습니다. 비밀번호를 여러 곳에서 돌려 쓰는 사람이 많다는 약점을 파고든 겁니다. 정문이 아니라 관리가 느슨한 옆문이 열린 셈입니다.
신한은행 건에서는 공격에 쓰인 서버에 남은 중국어 문자열이 아르텍스를 가리키는 단서로 발견됐습니다. 다만 금융당국이 AI 도구의 사용을 공식 확인한 단계는 아니고, 연관성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
AI가 혼자 한 일은 아닙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을 'AI가 스스로 은행을 해킹했다'고 부르면 사실과 어긋납니다. 흔적이 발견된 아르텍스 역시 사람이 목표를 정하고 돌린 도구이고, 업계에서도 AI가 단독으로 벌인 일로 보지는 않습니다. AI는 공격의 주체가 아니라 공격자의 손에 들린 도구였습니다. 다만 그 도구가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일을 자동으로 해낸다는 게 달라진 점입니다. 정찰과 취약점 탐색, 공격 확인까지 자동화될수록 공격에 필요한 시간과 인력은 줄어들고, 한 번 만든 공격 도구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퍼져 나갑니다.
남는 질문
정부도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금융당국은 전 금융권에 즉각적인 보안 점검을 지시했고, 대통령은 관계 부처에 "속도가 생명"이라며 보안 강화 조치를 주문했습니다. 해외 수사기관과의 공조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남긴 질문은 오픈소스와 에이전트 시대의 보안이 어디까지 왔는가입니다. 좋은 도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그래서 나쁜 손에도 들어갑니다. 방어용 AI가 공격에 쓰이는 시대라면, 방어 쪽도 사람이 일일이 지키는 방식으로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결국 AI로 뚫는 쪽과 AI로 막는 쪽의 속도 싸움이 시작된 셈이고, 그 첫 번째 큰 시험대가 한국 금융권이 됐다는 게 이번 사건의 무게입니다.
데이터 출처: 월스트리트저널 보도(2026년 10월 6일), 서울경제(2026년 10월 7일), TechTimes 등 공개 보도를 종합했습니다. 피해 규모와 기관별 인원은 보도 기준이며, 수사는 진행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