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100조 개가 몸을 통과하는데 왜 아무도 못 느꼈을까 — 중성미자를 잡은 사람들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몸을 통과하는 입자가 있습니다. 중성미자. 아이스큐브 관측소의 공식 안내를 빌리면 그 수가 초당 약 100조 개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 입자는 전하가 없고 질량은 거의 0에 가까워서, 웬만한 물질은 그냥 뚫고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붙잡히지 않는 입자에 '유령 입자'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이 입자는 태어날 때부터 유령이었습니다. 1930년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계산이 맞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가 에너지를 몰래 가져간다는 가설을 내놓았습니다. 본인조차 평생 검출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반쯤 포기한 이 입자가 실제로 잡힌 것은 1956년의 일입니다. 발견하는 데만 26년이 걸린 입자. 중성미자 연구는 처음부터 인내의 학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잡히지도 않는 입자를 왜 잡으려고 할까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태어난 곳의 정보를 하나도 잃지 않고 그대로 배달한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빛은 먼지와 가스에 막혀 가려지고, 전하를 띤 우주선은 우주의 자기장에 휘어 버려서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중성미자는 수십억 광년을 날아와도 방향이 휘지 않고 에너지를 거의 잃지 않습니다. 우주의 가장 격렬한 현장, 이를테면 거대 블랙홀의 한가운데 같은, 빛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려 줄 유일한 배달부인 셈입니다.
문제는 배달부를 붙잡는 방법입니다. 100조 개가 몸을 통과해도 평생 한 번 부딪힐까 말까 한 입자를 잡으려면, 아주 거대한 덫이 필요합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중성미자가 아주 드물게 얼음 속 원자핵과 부딪히면, 그 자리에서 빠른 하전 입자가 튀어나오며 푸른빛의 섬광을 남깁니다. 체렌코프 빛이라 불리는 이 섬광을 여러 센서가 잡으면, 센서마다 빛이 도착한 시각 차이로 입자가 어느 방향에서 얼마나 큰 에너지를 갖고 왔는지를 거꾸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충돌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표적이 클수록 확률이 오르니, 덫 자체가 거대해야 합니다.
1988년, 벨기에 출신의 물리학자 프랜시스 할젠은 엉뚱해 보이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남극의 얼음 그 자체를 검출기로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얼음은 투명하고, 수 킬로미터 아래는 빛 한 점 없는 어둠이며, 지질이 안정적입니다. 중성미자가 아주 드물게 얼음 속 원자핵과 부딪히면 짧은 빛의 섬광이 생기는데, 그 섬광을 얼음 속에 심어 둔 센서들로 잡아내자는 구상이었습니다.
왜 하필 남극의 얼음이어야 했을까요. 바다나 깊은 호수에 검출기를 내리는 방법도 있었고, 실제로 그런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물은 배를 띄워 장비를 내릴 수 있어 얼음보다 다루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닷속에는 빛을 내는 생물과 방사성 물질의 노이즈가 있고, 해류에 장비가 흔들립니다. 남극의 얼음은 수만 년에 걸쳐 쌓이며 공기가 거의 빠진 상태라 놀랄 만큼 투명하고, 한번 얼려 넣은 센서는 얼음째로 고정돼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가도 분명합니다. 고장 나면 수리할 방법이 없고, 공사는 1년 중 몇 달뿐인 여름에만 가능합니다. 그 대가를 감수할 만큼, 얼음은 조용하고 깨끗한 어둠이었습니다.
이 구상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23년이 걸렸습니다. 먼저 작은 검출기 아만다로 얼음에서 정말 빛을 잡을 수 있는지 증명했고, 2004년에 본격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작업은 해가 지지 않는 남극의 여름철에만 할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물로 얼음을 녹여 2.5킬로미터짜리 구멍을 뚫고, 센서를 꿴 케이블을 내려 얼려 붙이는 작업이 해마다 반복됐습니다. 센서 하나하나에는 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증배관과 작은 컴퓨터가 들어 있어, 잡은 신호를 스스로 걸러 지상으로 올려 보냅니다. 2010년 12월, 마침내 아이스큐브가 완성됐습니다. 남극점 아문센-스콧 기지 옆, 깊이 1,450미터에서 2,450미터 사이에 광센서 5,160개가 케이블 86줄에 매달려 있습니다. 검출기 전체의 부피는 약 1세제곱킬로미터, 얼음 무게로는 10억 톤쯤 됩니다. 관측소 안내에 따르면 이 얼음을 녹이면 수영장 100만 개를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지표면에는 신호를 모으는 관측동과, 우주선을 재는 표면 검출기가 함께 서 있습니다. 지금은 14개국 58개 기관의 과학자 약 450명이 이 관측소의 데이터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큰 망원경 중 하나가, 거울도 렌즈도 없이 얼음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아이스큐브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있습니다. 이 망원경은 하늘을 보지 않고 땅을 봅니다. 우주에서 쏟아지는 입자 중에는 중성미자와 비슷한 흔적을 남기는 뮤온이라는 방해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스큐브는 지구를 방패로 씁니다. 북반구 쪽에서 지구를 통째로 통과해 올라오는 입자만 골라 보는 것입니다. 지구를 뚫고 나올 수 있는 입자는 사실상 중성미자뿐이니, 잡음은 지구가 대신 걸러 주는 셈입니다. 하늘을 보려고 땅속 2킬로미터에 들어가, 지구를 필터로 거는 망원경. 발상의 전환이 만든 관측소입니다.
성과는 가동 2년 만에 나왔습니다. 2013년, 아이스큐브는 태양계 밖에서 온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처음으로 확정해 검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에너지는 이전에 검출된 중성미자보다 100만 배 이상 높았습니다. 지금은 주목할 만한 중성미자가 잡히면 전 세계 천문대에 실시간으로 경보가 나가고, 망원경들이 그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2017년 9월의 사건이 바로 그랬습니다. 약 300테라전자볼트짜리 중성미자 하나가 도착했는데, 그 방향과 시기가 마침 활발히 타오르던 블레이저 TXS 0506+056이라는 천체와 겹쳤습니다. 전 세계의 망원경이 후속 관측을 이어 갔고, 이 사건은 빛과 입자를 함께 쓰는 멀티메신저 천문학의 대표 사례가 됐습니다. 2023년에는 10년치 데이터를 모아 우리 은하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증거까지 발표했습니다. 유령 입자가 정말로 우주의 소식을 배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 남은 질문도 큽니다. 지구에는 태양이 만드는 에너지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이 쏟아지는데, 그 입자들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그토록 세게 가속하는지는 10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입니다. 빛으로는 가려져 볼 수 없는 가속 현장의 내부에서 곧장 날아오는 중성미자는, 이 수수께끼를 풀 가장 유력한 단서로 꼽힙니다. 아이스큐브가 쌓는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지도는 조금씩 그려지고 있습니다.
올해 10월 6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2026년 노벨 물리학상을 프랜시스 할젠에게 단독으로 수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여든두 살의 할젠은 당시 이탈리아에 머물며 전화로 소식을 들었고, AP통신에 "큰 놀라움이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수상 예측이 나온 적은 있지만, 막상 그날이 오자 기분이 묘했다는 소감도 덧붙였습니다. 수상 사유는 아이스큐브에 대한 결정적 기여와 천체물리 기원의 고에너지 중성미자 발견이었습니다. 1988년의 구상에서 계산하면 38년 만의 일입니다. 중성미자에게 노벨상이 간 것은 1995년의 첫 검출, 2002년의 우주 중성미자 관측, 2015년의 중성미자 진동 발견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2002년의 수상은 태양에서 온 중성미자로 태양 내부의 핵융합을 직접 확인한 성과였으니, 중성미자는 별의 속을 들여다보는 창에서 우주의 극한 현장을 비추는 창으로 자라 온 셈입니다. 시상식은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립니다.
아이스큐브는 지금도 남극의 얼음 아래에서 매일 테라바이트 단위의 원자료를 쌓고 있고, 검출 범위를 넓힌 차세대 관측소 아이스큐브-Gen2도 구상 단계에 있습니다. 할젠의 이야기가 남긴 것은 하나의 관측소만이 아닙니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면 도구를 새로 발명하는 수밖에 없고, 때로는 얼음 10억 톤 같은, 얼핏 황당해 보이는 발상이 가장 정직한 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초당 100조 개가 우리 몸을 통과하는 이 순간에도, 남극의 센서들은 그중 단 하나의 섬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데이터 출처: 스웨덴 왕립과학원 2026년 노벨 물리학상 발표, 아이스큐브 관측소 공식 자료(icecube.wisc.edu),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발표, 미국천문학회(AAS) 보도자료, CERN 발표. 블레이저 TXS 0506+056 사례는 방향과 시기의 일치를 후속 관측으로 확인한 멀티메신저 연구 결과이며, 차세대 아이스큐브-Gen2는 구상 단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