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과학자: 신약과 신소재를 발견하는 AI
신약 하나를 만드는 데는 10년에서 15년, 수십억 달러가 든다. 실패율은 90%를 넘는다. 그런데 이 공식을 AI가 다시 쓰고 있다. 2026년 현재, AI가 설계한 약물 173개가 임상시험 중이고, AI가 예측한 신소재 220만 개가 실험실 검증을 기다리고 있다. AI는 이제 과학의 '도구'를 넘어 '발견자'가 되고 있다.
1. 신약 개발, 전임상을 1년으로
AI가 신약 개발에서 가장 먼저 바꾼 건 속도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에서 전임상 단계(표적 발굴→후보물질 도출)는 3년에서 4년이 걸렸다. AI는 이를 13개월에서 18개월로 압축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단,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단계의 기간 단축은 아직 관찰되지 않았다.
성공률 수치도 놀랍다. 업계 집계 기준 AI 설계 약물의 임상 1상(안전성) 통과율은 80%에서 90%로, 전통 방식(40%에서 50%)의 거의 2배다. 다만 2상·3상의 탈락률은 전통 방식과 비슷한 수준이다. 안전성은 통과해도 효능 입증이라는 진짜 관문은 그대로라는 뜻이다.
2026년 현재 AI가 발견한 약물 프로그램 173개 이상이 임상 개발 중이다. 1상 약 94개, 2상 약 56개, 3상 약 15개다. AI 설계 약물의 첫 FDA 승인은 2026년 말에서 2027년 사이로 전망된다.
냉정한 시각도 있다. JAMA 리뷰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AI 연관 임상 후보물질 164개 중 승인까지 간 것은 1개뿐이고, 76%는 초기 분자 발굴 단계에 몰려 있다.
2. AlphaFold 계보: 단백질 구조에서 약물 설계로
AI 신약의 출발점은 단백질 구조 예측이다. 2020년 딥마인드의 AlphaFold 2는 50년 난제였던 단백질 구조 예측을 해결했다. 2025년 11월 기준 190개국 300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사용하고 있고, 예측 구조 데이터베이스에는 2억 개 이상의 구조가 공개돼 있다.
2024년 5월 네이처 논문으로 공개된 AlphaFold 3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단백질뿐 아니라 DNA·RNA·약물 분자와의 상호작용까지 예측한다. 단백질-약물 상호작용 예측 정확도가 기존 23%에서 76% 수준으로 향상됐다는 벤치마크 정리도 있다.
그리고 2026년 9월 24일, AlphaFold 데이터베이스에 바이러스 단백질 복합체 8,000개 이상이 추가됐다. 23개 바이러스 과를 아우르는 팬데믹 대비 포털이 열린 것이다. 데이터베이스 전체는 2억 6천만 개 이상의 예측으로 성장했다.
오픈소스 진영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Boltz-2, Chai-1, OpenFold3 같은 모델들이 AlphaFold 3를 따라잡고 있다. 다만 한계도 연구 중이다. AlphaFold 3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안정된 구조만 예측하기 때문에, 단백질의 형태 변화를 예측하려면 별도 기법이 필요하다는 2026년 9월 논문도 나왔다.
3. 임상의 문턱: Isomorphic과 Insilico
딥마인드에서 2021년 분사한 Isomorphic Labs는 AI 신약의 대표 주자다. 노바티스·일라이릴리와 총 30억 달러 규모의 협업을 맺었고, 2025년 3월 6억 달러, 2026년 5월 21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AI 신약 분야 역대 최대 규모다. 2026년 2월에는 자체 AI 플랫폼을 공개했다. AlphaFold 1·2가 오픈이었던 것과 달리 완전 비공개 전략이다.
임상 일정은 미뤄졌다. 하사비스가 "2025년 말 임상 진입"을 예고했지만 2026년 1월 다보스에서 2026년 말로 연기했다. 현재 항암·면역질환 중심 17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9월 말에는 회사 사장이 "AI 설계 후보물질들이 인체 시험에 진입 중"이라고 발표했지만, 독립 검증은 아직 없으므로 발표 수준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가장 앞서 있는 건 Insilico Medicine이다.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rentosertib는 AI가 표적 발굴부터 분자 설계까지 한 첫 약물로 임상 3상에 진입했다. 2026년 7월 3상 진입, 9월 10일 중국에서 첫 환자 투약이 이뤄졌다. 2a상에서 폐기능이 98mL 개선됐는데(위약군은 20mL 악화), 무작위 대조시험에서 효능을 보인 첫 완전 AI 설계 약물이다. 같은 회사의 중피종 치료제 ISM6331도 2025년 1월 중국에서 첫 인체 투약을 시작했다.
이 밖에도 Generate(4억 달러 IPO, 3상 프로그램 보유), Recursion(임상 5개 프로그램), Absci 등이 임상을 진행 중이다. 앤트로픽도 2026년 9월 생물학 연구소 설립이 확인됐다. 당장은 제약사에 AI 도구를 제공하는 중심이다.
4. 신소재: 220만 개의 결정을 예측하다
신약만큼 극적인 게 신소재다. 2023년 11월 네이처 논문에서 딥마인드의 GNoME는 220만 개의 새로운 결정 구조를 예측했고, 그중 38만 개가 안정 물질로 판정됐다. 인류가 알던 안정 물질(약 7만 개)을 42만 개로 확장한 것이다. 딥마인드는 "800년치 지식"이라고 표현했다.
핵심은 정확도가 아니라 워크플로다. AI가 후보를 제안하면 물리 시뮬레이션이 안정성을 검증하고, 실패 데이터까지 학습에 반영하는 '능동 학습' 구조다. 응용 분야도 구체적이다. 그래핀 유사 2차원 물질 5만 2천 개(기존 약 1천 개), 리튬이온 전도체 528개(기존 대비 25배)가 발굴됐다. 고체 전해질과 초전도체 후보다.
실험 검증도 진행 중이다. 외부 연구진이 GNoME 예측 구조 중 736개를 독립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고,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자율합성 로봇 A-Lab은 17일간 58개 목표 중 41개를 합성했다. 딥마인드는 2026년 개소 예정인 영국 자동화 연구소에서 하루 수백 개의 물질을 합성·분석할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사례도 유명하다. 2024년 1월 발표에서 양측은 3,260만 개 후보를 AI로 50만 개로 좁힌 뒤 고성능 컴퓨팅으로 걸러내 18개 후보를 80시간 만에 선별했다. 전통 방식이면 20년 이상 걸릴 작업이다. 발견된 물질 N2116은 리튬의 일부를 나트륨으로 대체한 고체 전해질로, 리튬 사용량을 약 70% 절감한다. 연구소가 실제 합성해 전도도를 측정하고 작동하는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까지 만들었다. 다만 2024년 1월 발표 사례로, 이후 상용화 소식은 아직 없다.
5. 솔직한 주의점
장밋빛 전망에 브레이크를 걸 필요가 있다.
첫째, 임상 실패율의 벽이다. AI 설계 약물도 인체 생물학의 복잡성은 피할 수 없다. 2026년 9월 현재 FDA 승인을 받은 'AI 발견' 신약은 아직 없다. 첫 승인이 나와야 '개념 증명'을 넘는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둘째, 기여도 논쟁이다. 많은 'AI 발견' 약물에 상당한 인간 개입이 있어서, AI의 공로를 어디까지로 볼지는 해석의 영역이다.
셋째, 구조 예측은 약 발견이 아니다. AlphaFold는 단백질 구조를 맞히는 도구지, 약효와 독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생물학을 예측하는 것과 의학을 바꾸는 것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넷째, 소재도 마찬가지다. GNoME의 220만 개는 '계산상 안정' 예측치다. 실제 합성·특성이 확인된 것은 736개로, 비율로 보면 0.03%다. 예측에서 실용까지의 간극이 크다.
마무리
AI 과학자의 2026년은 '가능성의 증명' 단계다. 전임상은 1년으로 줄었고, 3상 문턱에 선 AI 약물이 나왔으며, 220만 개의 신소재 후보가 쌓였다. 하지만 FDA 승인 0건, 90%의 임상 실패율, 0.03%의 합성 검증률 — 숫자는 아직 차갑다.
앞으로의 체크포인트는 명확하다. 첫 AI 신약의 FDA 승인이 언제 나오는가. 736개의 합성이 7,360개가 되는가. 그리고 AI가 발견한 물질이 실제 배터리와 약이 되어 우리 손에 닿는가. 과학의 발견 속도가 바뀌는 순간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 출처: Pharmaceuticals(2026), JAMA, 딥마인드(2025.11), Nature(AlphaFold 3, 2024.5 · GNoME, 2023.11), EMBL-EBI(2026.9), Nature Medicine(2025), 마이크로소프트·PNNL(2024.1) · 회사 발표·보도 수치는 발표 기준
